랠리 드라이버였던 아버지를 따라 카트장에 갔던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처음 앉아본 카트시트와 처음 느꼈던 그 미친듯한 속도감! 난 지금도 여전히 그 속도를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신한테 무슨 죄를 지고 태어난건지, 난 이쪽 방면엔 전혀 재능이 없었다. 커갈수록 포디움에 올라가는
기회가 점점 적어졌다.아버지는 그때 그 상황이 내 노력부족이라고 여기시고 매일 학교 끝나고부터 저녁 늦게 카트장이 닫을때까지 나에게 카트를 타게 하셨다. 지금에서야 말하는거지만, 너무 힘들었다. 잘 되지도 않는걸 억지로 하려니 재미가 없었다. 나는 고민했다. 내가 이걸 계속해야하나? 고민은 2년동안 계속되었고, 나는 결국 결론을 내리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저 카트 그만둘래요."
당연히 아버지는 노발대발 화를 내셨고, 나는 아버지의 화가 진정될때까지
근 1년 반동안 이모의 집에 어머니와 같이 피신해있어야 했다.(다행히 그녀의 집은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멀지 않은곳에 있었다.)
1년 반 후, 결국 아버지는 내 고집을 꺾지 못하시고 포기하셨다. 대신 나에게 뭘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는 카트말고 다른 운동을 하고싶다고 대답했고, 종목은 조금더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내나이 열살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식구들은 지금도 그 일을 기억하면서 그 쪼끄만 애가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웃는다.지금 생각해보면, 난 유달리 고집이 셌던게 확실했다.
"아버지, 저 축구할래요."
열한살즈음의 여름, 나는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축구가 재밌다고,공차는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말없이 읽던 신문을 접으시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그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다음날, 나는 마르세유라는 팀의 유스팀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아버지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계속
나를 지켜보셨고,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연신 생긋생긋 웃어가며 테스트를 받았다.
테스트가 끝이나고, 코치님이 웃는 얼굴로 결과는 다음주 쯤에 알려준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지만
나는 코치님이 주신 사탕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집에오는길, 아버지가 나에게 무심하게 물었다,
"공이 좋으냐."
"그럼요. 밥도 안먹고 공만 막으라 그래도 할수있을것 같아요."
"그러냐."
나의 대답에 아버지는 전에 없던 미소를 지었다.나도, 전에 없던 편안함을 그에게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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